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 관련 3가지 쟁점별 팩트체크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념과 역사에 대한 논쟁이 현재 화두입니다. 국방부는 홍 장군의 공산주의적 이력을 제시하며,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그의 흉상 이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홍 장군을 범국민적 이념에 반하는 공산주의자로 보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팩트 체크를 진행해보겠습니다.
쟁점 1: 홍범도 장군과 자유시 참변의 관계
국방부는 홍 장군이 소련공산당 중심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으며, 자유시 참변 재판위원으로 참가한 사실 등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이는 1921년 6월에 발생한 자유시 참변과 홍 장군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이와 달랐습니다. 일부 역사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홍 장군은 자유시 참변에 개입하지 않았고, 사건이 발생한 6개월 후에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탄원서를 소련 정부와 러시아 공산당, 국제공산연맹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탄원서에는 홍 장군 외에도 다수의 대대장급 인사들이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홍범도 장군이 참변 당시 자유시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동순 명예교수는 “홍 장군은 참변 당시 자유시에 없었으며, 사건이 발생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재판에 참여한 것은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후에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쟁점 2: 레닌과 홍범도 장군의 관계
국방부는 홍 장군이 레닌으로부터 권총, 상금, 친필 서명된 ‘조선군대장’ 증명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이를 바탕으로 레닌 공산당과의 연관성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장세윤 명예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반박하였습니다. 그는 “1922년 당시 레닌의 러시아 혁명정부는 세계의 약소 민족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였다“며, 홍 장군이 받은 표창은 공산당원으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조선의 항일 활동을 격려하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홍 장군이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러 간 것이 아니라,조선 독립운동의 실상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소련을 방문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쟁점 3: 홍범도 장군의 이념
국방부는 홍 장군의 공산주의적 이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홍 장군의 이념에 대한 평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분분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보지만, 다른 일부는 그를 민족주의자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홍 장군이 작성한 글에서는 자신의 이념을 ‘민족주의’로 표현하였고, 이는 민족의 독립과 자주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그의 행동과 결정을 보면, 조선의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홍범도 장군의 이념과 역사에 대한 논란은 단순히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닌, 우리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런 논란을 통해 역사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에 따른 교육과 기억의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국방부의 주장과 반론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홍 장군이 공산주의자로 단정지을 수 있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홍 장군의 행동과 글에서는 민족주의적 이념이 강하게 드러나며, 그의 활동은 주로 조선의 독립과 자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그가 조선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