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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긍휼 뜻 | 긍휼 뜻 헬라어 | 긍휼 예문 | 긍휼 한자

여러분은 기도나 찬송에서 “긍휼”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예배 중에도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간구하는 표현이 자주 나오곤 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와 뉘앙스를 알고 계신가요? 흔히 사용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긍휼을 막연히 “자비”나 “불쌍히 여김” 정도로 이해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개념인 긍휼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긍휼의 기본적인 의미와 현대어로의 해석부터 시작하여, 성경 원문 속 원어의 뜻,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의 사용 예시와 의미,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긍휼을 실천하는 방법까지 다루어 보겠습니다. 또한 단어 긍휼(矜恤)이 담고 있는 한자적 의미도 알아보며, 이 단어에 담긴 깊은 마음을 음미해 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긍휼의 의미를 깨닫고, 우리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함께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긍휼 뜻

먼저 ‘긍휼’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뜻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긍휼한마디로 말해 불쌍히 여겨서 돌보아 줌, 즉 남의 딱한 처지를 마음 아파하여 이해하고 돕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불쌍히 여기다” 혹은 “동정하다”라고 표현하는 정서와 맥락이 비슷하지만, 긍휼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동정을 넘어 적극적으로 베푸는 자비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보고 마음속 깊이 측은히 여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를 돕고 보살펴 주는 행동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바로 긍휼입니다. 요즘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은 아니지만, 특히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긍휼이란 단어가 매우 자주 등장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긍휼” 또는 “긍휼히 여기신다”라는 표현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고통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자비로운 마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현대어로 굳이 바꾸어 말하면 긍휼“깊은 동정심과 자비” 또는 “공감 어린 연민” 정도로 풀어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긍휼을 베푼다”는 말은 곧 “자비를 베풀어 돕는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자비”, “연민”, “동정” 등이 있지만, 긍휼은 주로 상대의 고통이나 연약함을 극진히 불쌍히 여기는 마음그에 따른 선행을 가리키는 데 쓰입니다. 특히 이 단어는 신앙적인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자비와 극률, 그리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마음가짐을 강조할 때 쓰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누군가의 불행을 마음 아파하며 그를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을 떠올리시면 가장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긍휼 뜻 헬라어

신약성경은 헬라어(그리스어)로 기록되었는데, ‘긍휼’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헬라어 단어는 “엘레오스”(ἔλεος)입니다. 이 엘레오스라는 단어는 자비, 연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뜻하는 명사로, 고대 그리스어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동정심을 가리킵니다. 단순히 피상적인 동정보다 훨씬 깊고 진실한 연민(憐憫)으로서, 엘레오스에는 고통받는 이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고자 하는 적극적인 마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어려움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를 구해 주려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극률이 바로 엘레오스입니다.

예를 들어 신약성경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외칠 때가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주여, 우리를 엘레오스 해 주소서”와 같은 표현인데, 이것이 바로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한국어 성경 번역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엘레오스는 하나님께 간구할 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라고 청하는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며, 긍휼과 동의어로 쓰입니다.

한편, 신약성경에서 긍휼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으로 “오이크티르모스”(οἰκτιρμός)나 “스플랑크논”(σπλάγχνον) 같은 단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플랑크νον은 문자적으로 “내장, 창자”를 가리키지만 비유적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강한 사랑과 동정을 의미하여,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다”라고 번역되는 구절들에서 사용됩니다. 이는 마치 마음이 뒤집힐 정도의 깊은 연민을 표현합니다. 결국 신약의 여러 단어들이 표현하는 바는 모두 통합되어, 긍휼남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느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손을 내미는 마음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긍휼에는 진심 어린 공감과 함께 반드시 그를 향한 선행(善行)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 속 ‘긍휼’의 사용 예시와 의미 (구약과 신약)

긍휼은 성경 전체를 흐르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신앙인이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강조됩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 곳곳에서 긍휼이라는 말이 등장하며, 각각 맥락은 조금씩 달라도 핵심적인 뜻은 일관되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난 자비로운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번에는 구약과 신약의 몇 가지 예시를 통해 긍휼이 어떻게 사용되고 그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긍휼

구약성경에서 긍휼은 주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자주 쓰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는 “라함”(רַחַם) 혹은 “라훔”(רַחוּם)이라는 단어가 긍휼, 긍휼히 여기다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은 놀랍게도 “자궁(子宮)”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라함이라는 말은 “어머니가 자기 태에서 나온 아이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묘사할 때는 어머니가 자식을 극진히 돌보는 듯한 깊은 사랑과 연민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여인이여, 내가 어찌 너를 잊겠느냐?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이사야 49:15 참조)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마치 어머니가 젖먹이를 가슴 아파하며 돌보듯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렇듯 긍휼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으로 언급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 이름을 선포하시며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애굽기 34:6)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비롭고 은혜롭고”라고 번역된 부분의 “자비”(자비로운)가 바로 긍휼이 많으신이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도 “주는 긍휼이 많으시며 은혜로우시다”(시편 103:8, 86:15 등)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괴로움을 늘 불쌍히 여기시며 도우시는 분임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죄 가운데서 즉시 멸망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얻으며, 고난 중에도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에서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긍휼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와 연민을 가리키며, 그 긍휼이 매일 새롭게 부어지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구약에서는 인간이 서로 베푸는 긍휼도 강조됩니다. 미가서 6장 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하시는 바를 말씀하시며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꼽으십니다. 여기서 “인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세드”(חֶסֶד)는 자비, 긍휼, 신실한 사랑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정의롭게 살며 동시에 긍휼과 자비를 사랑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잠언에도 “인자하게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한다”(잠언 11:17)며 긍휼을 베푸는 삶을 권면하고, 스가랴 7장 9절에서도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고 명령합니다. 요컨대 구약성경은 긍휼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끝없는 사랑이자 사람 사이에 실천해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긍휼

신약성경에서도 긍휼은 매우 두드러진 주제입니다. 신약에서는 앞서 설명한 헬라어 “엘레오스”를 비롯해 “오이크티르모스”, “스플랑크나”(복수형) 등의 단어로 긍휼의 개념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긍휼을 몸소 보여주신 분입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환자를 불쌍히 보셨다, 죄인을 긍휼히 대하셨다 등의 구절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자체가 긍휼로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허기진 무리를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바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의 병자를 고쳐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때 예수님의 마음속에 품었던 긍휼이 바로 기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곧 긍휼한 마음이 능력의 역사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약에서 긍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타나는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감동적인 장면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의 무덤을 찾으시지요. 거기서 울고 있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심령에 몹시 비통해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복음 11:33-35).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은 곁에 있던 사람들이 볼 정도로 분명한 것이었고, 사람들은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눈물 속에 담긴 마음이 바로 긍휼입니다. 타인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함께 슬퍼해 주는 마음,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울고 있는 이들과 같이 울어주시며, 그 슬픔을 깊이 공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놀라운 기적으로 그 긍휼의 마음을 완성하십니다. 이처럼 긍휼은 예수님의 눈물과 기적으로 대변되는, 마음의 공감과 실제적인 구원의 행동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외되고 죄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도 긍휼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멸시받던 세리(세금징수원)나 창녀와 같은 죄인들, 유대인들이 꺼리던 사마리아인, 병들어 부정하다고 여겨진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은 배척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대화하고 식사 교제를 나누셨으며, 그들의 형편을 이해하고 용서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그 중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돌을 들고 그녀를 정죄하려 할 때, 예수님은 조용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심으로써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셨습니다. 결국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고 떠나간 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율법대로라면 마땅히 벌받아야 할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긍휼은 죄인을 벌하기보다 회복시키고 구원하기 위한 사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또한 긍휼이 여기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 중 다섯 번째 복이 바로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마태복음 5장 7절에서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남에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도리어 하나님께 긍휼함을 입는다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자비를 이웃에게 흘려보내면, 하나님은 더욱 넘치는 긍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이는 곧 긍휼이 신앙인의 삶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값없이 긍휼과 용서를 받은 사람은 마땅히 형제자매를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용서받은 종의 비유’(마태복음 18:21-35)를 떠올려 보십시오. 임금에게 큰 빚을 탕감받은 종이 정작 자기에게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고 가혹하게 굴자, 이를 들은 임금이 노하여 그 무자비한 종을 벌주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긍휼과 용서 없는 신앙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한다면 다른 이를 긍휼히 여기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서는 “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또 야고보서 2장 13절에서는 “극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극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하며 자비를 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우리에게 긍휼이 단순한 감정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되는 사랑임을 거듭 일깨워 줍니다. 초기 교회 성도들은 기근이나 환난 때 서로 돌아보고 구제하였으며(사도행전 11:29, 고린도후서 8-9장 등), 믿는 이들이 긍휼과 나눔의 삶을 살아갈 때 교회 공동체에 사랑의 향기가 가득했던 것을 우리는 성경과 교회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성경 속 긍휼하나님의 한없는 자비로부터 예수님의 사랑의 실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으로 묘사되며, 예수님은 그 긍휼을 세상에 보이신 분이며, 우리 신자들은 그 긍휼을 본받아 서로에게 실천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긍휼은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의 핵심적인 표현이며, 구약의 히브리어 “헤세드”(인애, 자비)와 “라함”(극진한 동정)에서부터 신약의 “엘레오스”(자비, 긍휼)와 “스플랑크나”(깊은 동정심)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언어와 시대를 관통하여 “불쌍히 여겨 돕는 마음”이라는 한 뜻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이제 그 긍휼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상에서 긍휼을 적용하는 방법과 예시

긍휼은 머리로만 아는 개념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사랑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셨듯이, 우리도 일상에서 긍휼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긍휼을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상황과 예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장면들을 통해, 어떻게 긍휼의 마음을 갖고 행동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 실수한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해 줄 때: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또는 직장 동료가 실수하거나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화를 내고 정죄하기보다는, 긍휼의 마음으로 그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역시 실수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동료가 중요한 일을 그르쳐 손해를 끼쳤다면 먼저 그 사람이 느낄 부담과 속상함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면 “괜찮아요, 누구나 그럴 수 있지요. 다음에 잘하면 되죠”라고 말하며 위로하고 격려해 주세요. 이것이 바로 일상에서 긍휼을 베푸는 모습입니다. 상대방은 이해와 용서를 받음으로써 다시 힘을 얻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기억하며 겸손한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울 때: 주변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몸이 아픈 이웃이 있다면, 긍휼한 마음으로 그들을 돕기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까운 교우 중에 병환으로 고생하는 분이 계시다면, 시간을 내어 병문안을 가거나 집안 일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또는 갑작스런 실직이나 가정 형편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생활에 필요한 물질을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형편을 보고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 참 안 됐다”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였다면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힘써 보는 것입니다. 작은 정성이지만 따뜻한 음식 한 끼를 대접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전해 주거나,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다면 헌금을 전달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긍휼의 손길은 당장 큰 문제를 모두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해주는 통로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더욱 따뜻해집니다.
  •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울 때: 우리 주변에는 실의에 빠지거나 깊은 슬픔 중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거나, 큰 실패나 좌절을 맛본 분들이 있다면, 긍휼의 마음으로 그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12장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의 마음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태도입니다. 친구가 힘든 일을 당했을 때 굳이 뭔가 교훈을 주려 하거나 조언을 쏟아내기보다, 그저 옆에서 함께 눈물 흘려주고 어깨를 빌려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일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가까운 지인이 큰 슬픔 가운데 있다면, “힘내라”는 말보다 조용히 손을 잡아주며 같이 눈물 흘려주는 행동이 긍휼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파하는 만큼 우리 마음도 아파하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끼고 함께 해 주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긍휼의 한 모습임을 기억합시다.
  •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돌아볼 때: 예수님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긍휼 실천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주위에 소외된 이웃이 없는지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길거리의 노숙인, 외롭게 지내는 독거노인, 차별받는 이주민이나 장애인 등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만 주변의 무관심 속에 고통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볼 때 외면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 긍휼한 마음으로 다가가 말을 건네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아보세요. 한겨울에 추위에 떠는 노숙인에게 따뜻한 음식을 사다 줄 수도 있고, 복지시설이나 봉사단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후원하거나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처지를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고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와 가난한 자들을 친히 찾아가 만져 주시고 고쳐 주신 것처럼, 우리도 작은 예수의 심정으로 약자들을 돌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긍휼의 실천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사랑의 행동입니다.
  • 기도와 중보로 긍휼을 행할 때: 직접적인 행동으로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기도를 통해 긍휼을 실천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당장 내가 손으로 도울 수 없는 상황의 어려움도 많습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할 수 있습니다. 병상에 있는 지체를 위해 치유와 위로를 구하고,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회복을 간구하며,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구원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멀리 있는 분쟁 지역이나 재난 현장의 사람들을 직접 도울 수 없어 안타까울 때에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진심 어린 기도는 곧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긍휼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이런 긍휼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도 변화시켜 주셔서 더욱 자비로운 성품을 지닐 수 있게 하시고, 상황 가운데 역사하여 주십니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경우 외에도, 긍휼은 우리의 삶 전체에 스며들어야 할 태도입니다. 크고 작은 매일의 일들 속에서 순간순간 상대의 형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긍휼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긍휼한 삶이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날마다 실천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내 일처럼 여기고, 나누어줄 수 있는 도움과 사랑을 베풀며, 쉽게 정죄하고 책망하기보다 먼저 품어주고 용서하는 자세야말로 긍휼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을 복되게 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는 말씀처럼,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오히려 더 큰 기쁨과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기뻐하시고 또 필요한 긍휼을 때에 따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긍휼 한자

마지막으로 ‘긍휼’이라는 단어의 한자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긍휼(矜恤)은 두 개의 한자로 이루어진 말인데, 각각의 글자가 담고 있는 뜻을 알면 이 단어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 ‘긍’(矜)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이 단어에서는 “불쌍히 여기다”, “불쌍하게 여길 긍”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긍’(矜)자는 창 모양의 부호와 지금을 뜻하는 글자가 합쳐진 모습인데, 옛날에는 이 글자가 “가엾게 여기다”와 “자랑하다”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현대 한국어에서도 긍지(矜持)나 자긍심(自矜心) 같은 단어에서는 자가 “스스로 자랑하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긍휼이라는 낱말 안에서는 남을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긍’은 남의 딱한 처지를 보고 마음 아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음으로 ‘휼’(恤) 자를 살펴보겠습니다. 휼(恤)자는 마음 심(心) 변에 피 혈(血) 자가 붙어 있는 형태입니다. 이 글자의 구성 자체가 하나의 상징적인 그림처럼 느껴지는데, 마음과 피가 합쳐진 자는 흔히 “피가 날 정도로 마음 아파한다”는 뜻으로 풀이되곤 합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마음에서 피가 흐르듯 아파한다는 강렬한 동정과 슬픔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겨 돕는다”, “구휼하다”(굶주리거나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도와준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우리가 흔히 들어본 구휼(救恤)이나 구휼금 할 때의 그 자가 바로 이 글자입니다. 그러니 긍휼은 글자 그대로 풀어 보면, “가엾이 여겨 마음 아파하고 도와준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아파 피를 흘릴 만큼 깊이 가엾게 여기고 돌본다는 뜻이라고 하니, 긍휼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울림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으신가요?

한자 긍휼(矜恤)의 뜻을 이렇게 살펴보면, 성경과 일상에서 이야기한 긍휼의 의미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긍(矜)이 표현하는 측은히 여기는 따뜻한 심정과, 휼(恤)이 표현하는 마음 아파하며 실제로 돕는 행동이 합쳐져 긍휼이라는 말이 되었으니, 결국 “딱한 형편에 놓인 사람을 깊이 공감하고 그를 구해준다”는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이러한 한자의 의미를 알고 나면,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도 다른 이를 긍휼히 여긴다는 것이 단순한 동정 이상의 마음의 아픔과 행동을 수반한다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맺는 글: 긍휼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

지금까지 ‘긍휼’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풍성한 의미와 성경적 가르침, 그리고 일상 속에서의 적용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긍휼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외면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바로 긍휼이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은 그 긍휼이 인간의 몸을 입고 행하신 살아있는 사랑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에베소서 2:4)의 자녀답게, 우리 주변에 긍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손길을 내밀어야겠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다른 이의 아픔에 눈감아 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반복되는 타인의 실수나 연약함에 마음이 식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을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비는 한없이 인내하며 우리를 품어주지 않았던가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을 기억한다면, 긍휼의 마음으로 형제자매를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긍휼은 결코 약한 마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강한 사랑에서 비롯된 능력입니다. 세상은 때로 냉혹하고 경쟁이 치열하여, 남을 밟고 일어서야 살아남는 곳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긍휼과 사랑으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우리가 긍휼을 실천할 때, 사람들의 마음은 열리고 상처는 치유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갑니다. 무엇보다 긍휼을 베푸는 사람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과 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약속처럼, “긍휼히 여기는 자”는 결국 자신도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는 물론이고, 장차 하나님 앞에서도 긍휼의 열매는 우리의 상급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변에서 오늘 당장 긍휼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천천히 둘러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작은 것부터라도 사랑을 실천해 보십시오. 가까운 가족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일 수도 있으며,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긍휼의 마음으로 건네는 한 마디 친절한 말, 한 번의 따뜻한 관심이 그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될지 모릅니다. 우리의 작은 긍휼의 실천이 모이고 모여서, 냉랭한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지고 따뜻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극진한 긍휼을 늘 기억하며, 주님의 마음을 담아 긍휼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긍휼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고, 또 여러분을 통해 흘러넘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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